동물학대 논란: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사건
KBS 1TV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 7화에서 낙마하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촬영을 위해 말 발목에 와이어를 묶고, 달리는 말의 와이어를 잡아당겨 앞으로 고꾸라지도록 연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촬영이 직접적인 원인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해당 말은 촬영 일주일 후 급사했다.
그리고 비영리법인 동물자유연대는 동물보호법을 근거로 낙마장면 촬영, 게시가 동물학대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동물보호법에서 동물학대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을 대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불필요하거나 피할 수 있는 신체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에 조치를 게을리하거나 방치하는 것을 말한다.
동물보호법에 의하면 보호받을 수 있는 동물에는 제한이 있고 동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모든 게 동물학대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어떨까?
동물 "사용", 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인가
1. 전통적인 윤리 이론: 기독교 윤리학과 공리주의
전통적인 윤리 이론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했다. 다시 말해, 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인가 하는 논쟁에 동물은 속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동물은 사람처럼 이성적인 특징과 언어를 사용해 의사소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윤리 이론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 못 하는 동물을 죽이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게 아니라고 했다. 신의 섭리에 따라 동물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이든 이용하든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퀴나스도 동물을 잔인하게 다루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했다. 다만 이것은 동물을 아끼고 사랑해서가 아니라, 동물을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은 인간도 잔인하게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제임스 레이첼즈, pp. 191)
우리가 동물을 사용하는 많은 모습은 기독교 윤리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점차 줄여나가고는 있지만 동물 실험, 가죽 옷, 박제 장식물, 동물원과 산천어축제, 소싸움 등 우리는 동물을 잘 이용하고 있다.
공리주의적 입장은 조금 다르다. 고전적 공리주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양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 도덕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행복이나 불행의 양이 중요할 뿐, 누가 행복/불행을 느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고전적 공리주의의 관점에서는 동물도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고통을 줄이고 더 행복하도록 하는 것이 도덕적이다.
2. 현대의 윤리 이론: 현대 공리주의와 피터 싱어
현대의 공리주의는 대개 고전적 공리주의의 입장과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도 있다. 인간에게 동물 실험할 권리 혹은 동물을 사용할 권리가 있고, 인간의 이러한 행동이 인간이 동물에게 "나쁘게 행동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현대 공리주의는 장기적인 시선에서, 동물에게 해를 입힐 때 정당성이 있다면 부도덕하지 않다고 말한다.
다음 실험의 예시로 이해할 수 있다.
한 연구원 집단이 전기충격이 개의 행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했다. 연구원은 상자 안에 장벽을 세워 두 구역으로 나누었다. 상자에 한 마리의 개를 가두고 상자의 한 구역에 전기충격을 가한다. 그리고 그 개가 장벽을 넘어오면 넘어온 곳에는 전기충격을 가하지 않는다. 다음 실험에서는 장벽을 투명한 유리로 막은 후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개는 앞으로 점프하면서 머리를 유리에 부딪쳤다. 개는 여러 불안, 저항 증세를 보였으나 10일에서 12일 후 저항을 멈췄다. 연구원 집단은 유리 장벽과 전기 충격이 개가 점프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결론지었다.
(제임스 레이첼즈, pp. 194) (RICHARD L. SOLOMON, LEON J. KAMIN, LYMAN C. WYNNE 1953, 291-302)
이 실험은 실험 자체만으로는 개에게 행복을 주는 보상 없이 고통을 가하기만 해서 부도덕하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현대 공리주의는 이 실험이 부도덕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 실험이 심리학계에서 중요한 '학습된 무력감'을 연구했는데, 장기적으로는 이 연구가 개가 느낀 고통보다 정신적 장애인의 치유에 도움을 주어 행복의 양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리주의 관점의 생명윤리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는 인간과 동물이 완전히 동일한 입장에서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싱어의 중요 개념 중 하나는 이익평등 고려의 원칙이다. 이익평등 고려의 원칙은 어떤 사람이 그가 무엇을 닮았는지, 그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와 관계없이 그의 이익(기쁨, 행복, 불행 등)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에 따라 어떤 사람이 내가 속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착취할 권리가 없으며, 지능이 다른 사람보다 못한 사람들의 이익을 무시해도 좋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이 개념을 확장해 그는 '종족주의(speciesism)'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인간종과 동물종도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착취할 권리가 없으며 이익을 무시해도 좋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터 싱어, pp. 82)
피터 싱어는 굉장히 놀라운 예시를 든다.
성인은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능력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같은 경우에 처해 있는 동물보다도 더 많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중략) 똑같은 실험이 동물에 수행된다면, 고통을 덜 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동물은 ... 실험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기적인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동물에게 실험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실험이 행해져야 한다면 성인보다는 동물을 이용해야 할 종족주의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바로 이와 같은 논변이 비장애 성인보다는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나 어린이들, 아마도 고아들을 실험에 사용할 이유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 주목해야만 한다. (피터 싱어, pp.86)
3. 우리의 작은 이익을 위해 큰 동물 이익을 빼앗는 방식
피터 싱어는 세 가지 형태로 우리가 동물종의 이익을 빼앗는다고 설명한다. 음식으로, 실험으로, 기타(유흥으로)가 각각 그 방식이다.
음식으로서의 동물
우리는 동물을 먹는 작은 이익을 위해 동물의 생존권을 침해하고 있다.
동물을 먹는 것이 정당화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이누이트족은 동물을 음식으로 삼지 않으면 굶어 죽어야 하는 환경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존권과 음식으로서의 동물 생존권이 정당하게 대립할 수 있다. 성장기 어린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우리의 식단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생존에 적합한 음식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사실은 동물의 고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동물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수록 효과적이다. 그리고, 값싼 고기라도 얻기 위해 소비되는 곡물의 양을 생각해보면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싱어는 도덕적 식단을 위해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도덕적 식단을 지키며 동물을 먹기 위해서는 동물이 비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생존권을 보장하고 그 동물들이 음식이 되기 전 겪는 고통 - 어미와 새끼의 분리, 무리의 분리, 낙인, 수송, 도살 - 을 우리가 동물을 먹을 때 얻는 기쁨보다 작게 줄이면 된다. (피터 싱어, pp. 89)
도덕적으로 동물을 먹는 방법은 불가능해보인다. 하지만 이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익평등 고려의 원칙에 따라 그 동물이 겪은 고통이 우리가 동물을 먹음으로 인해 얻는 기쁨보다 작아야 정당하게 도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
동물실험은 '정당화될 이유'가 많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많은 동물 실험이 다른 방식으로 대체되거나 사라지고 있지만, 동물실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동물 실험이 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으며 실험으로 동물이 느끼는 고통보다 실험을 통해 얻게 될 사람들의 행복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현대의 동물실험의 경우 인간이 얻을 수 있는 불확실한데, 동물이 얻는 고통은 확실하고 더 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샴푸가 개발되었을 때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토끼 눈에 농축액을 떨어뜨리는 드레이즈 테스트(Draize test)를 살펴보자면 우리 삶에는 이미 충분한 샴푸가 개발되어 있고 위험할 수 있는 새로운 샴푸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피터 싱어, pp. 92).
유흥에 사용되는 동물
여러 종류의 사냥, 서커스, 로데오, 동물원, 애완동물 사업 등이 있다. 유흥에 사용되는 동물을 다루는 것도 앞선 두 종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동물학대 논란, 윤리적인 관점에서는?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 촬영이 동물보호법을 근거로 동물학대에 해당하는지 해당하지 않는지는 법조계에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법은 윤리의 작은 부분집합을 사회적으로 약속한 내용이다. 따라서 법적으로 동물학대라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윤리적 기준에서는 부도덕적인 행동일 수 있다. 그렇다면낙마 장면 촬영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면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낙마 장면을 촬영한 방식은 전통적인 기독교 윤리학의 관점, 고전적 공리주의의 관점, 현대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모두 부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윤리학 관점에서 낙마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센 힘으로 달려가는 말을 넘어뜨리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말 위에 타고 있던 배우에게 해를 입혔기 때문에 부도덕하다. 촬영 당시 액션 배우가 말에서 멀리 떨어졌으며 일부 기사에서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이 넘어지는 장면을 말의 다리에 줄을 묶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연출했다면 액션 배우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고전적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 행위를 통해 얻어진 고통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보다 크기 때문에 부도덕하다. 공리주의적 입장에 따라 고통과 행복의 총 크기는 대상이 동물이냐 사람이냐에 관계 없이 계산될 수 있다.
낙마하는 장면을 촬영하여 우리는 유흥의 측면에서 이익을 얻는다. 이때의 이익은 상업적, 금전적 이익이 아니라 고통, 불행, 기쁨의 기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이익은 우리가 드라마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이익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잔인하고 끔찍하다고 말하는 지금, 더 이상은 낙마하는 장면을 보고 유흥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말은 분명히 고통을 당했다. 달리는 순간 발이 잡아당겨져 자신의 체중과 달려 나가던 힘으로 땅에 곤두박질쳤다. 더구나 사인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진단하지는 못했지만 말의 죽음에 촬영의 영향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잘 연출된 낙마하는 장면을 보고 느끼는 행복은 말의 육체적 고통, 말의 죽음, 액션 배우의 육체적 고통, 사람들의 감정적 고통에 비해 월등히 작기 때문에 이는 부도덕한 행동이다.
현대 공리주의의 관점에서는 고전적 공리주의의 입장과 유사하나 얼마나 이 촬영에 정당성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표명된 입장으로는 말에게 해를 입히는 데에 정당성이 없어서 부도덕하다.
마치며
낙마하는 장면을 촬영한 방식이 도덕적인가 부도덕한가는 앞선 논의가 없어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동물권과 동물 보호가 이슈가 된 지금, 단순히 말이 죽고 고통받았기 때문에 이것이 사회적으로 규탄받는 게 아니라 어떤 배경들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배경을 우리 삶에 적용해보면 낙마하는 장면 촬영에 가담하지 않은 우리 역시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물권을 빼앗고 있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다수의 윤리학 이론은 다른 이론들과는 다르게 '~해야 한다'는 암시를 강하게 준다. 이 글을 읽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감정을 느낄 것이다. 누군가는 단순히 이론으로서 이런 관점이 있다고 받아들일 수도, 누군가는 행동을 이렇게 제약하느니 모르는 체하겠다고 화를 내거나 무시할 수도 있다.
나도 물론 도덕적으로 동물의 이익을 위해 애쓰고 있지 않다. 그리고,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이렇게 살면 당장 내가 불편하니까 이를 무시하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작성한 이유는 누군가를 나무라거나 동물권 보호를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동물권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동물권을 정당하게 보호하고 있지 않지만, 이 글을 쓰며 언젠가는 동물에게 큰 고통을 주는 육식을 포기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언젠가는 빠른 시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도 나에게는 중요한 단계이다.
모두가 한 번에 이상을 달성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주 작은 영향일지도 모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속도에 맞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길 소망한다.
<동물자유연대 고발 게시글>
[참고자료]
- 제임스 레이첼즈(James Rachels). (2017). 도덕철학의 기초 (pp. 191-199). 서울: 나눔의 집.
- 피터싱어. (2003). 실천윤리학 (pp. 81-109). 서울: 철학과현실사.
- RICHARD L. SOLOMON, LEON J. KAMIN, LYMAN C. WYNNE. "TRAUMATIC AVOIDANCE LEARNING: THE OUTCOMES OF SEVERAL EXTINCTION PROCEDURES WITH DOGS." THE JOURNAL OF ABNORMAL AND SOCIAL PSYCHOLOGY 48 no.2 (1953): 291-302.
- 동물보호법 제2조 <개정 2013. 8. 13., 2017. 3. 21., 2018. 3. 20., 2020. 2. 11.>
- 같은 법 제8조 <개정 2013. 3. 23., 2013. 4. 5., 2017. 3. 21.>
- 유원정, "[단독]'태종 이방원' 말 주인 "멀쩡했는데…한밤중에 '급사", <CBS노컷뉴스>, 2022. 1. 21.
- 정혜정, "목 꺾인 '이방원 말' 죽었다···"KBS 동물학대 드라마 폐지" 확산", <중앙일보>, 2022. 1. 21.
- 전형주, "저 말은 살았나요?"…'태종 이방원' 고꾸라진 말 또 있었다", <머니투데이>, 2022.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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